전시내용
갤러리 엘비스가 해마다 마련하는 젊은 작가 기획전은 올해에는 New Focus라는 전시명으로 다섯 작가가 참여했다. 지난해를 넘기며 하나 둘 찾았던 작가들이 전시라는 자리로 모이기까지 그들 나름대로의 소통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 작가의 길에 막 들어선 신진이라는 점 외에 이들의 작품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각자의 개성과 표현방식이 스스럼이 없고 그들만의 언어를 망설임 없이 화면에 펼쳐 보이고자 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간의 공통점을 정의해야 한다면 그들이 생활 속에서 포착한 사물이나 이미지에 원래 그것이 가진 의미를 대신해 새로운 의미 재생산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작가가 화면에 펼쳐 보이는 이미지의 표면적 의미와 그 이면에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포는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의 감성과 고민을 옮겨놓는 것이기에 충분한 소통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시세부

1. 사육당하는 돼지는 우리의 자화상, 박종호
박종호는 젊은이다운 비판의식과 자신을 포함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시점을 사육 되고 있는 돼지를 통해 은유적이지만 그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어내고 있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돼지는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보다 우리 속에 갇혀 주는 먹이만 받아먹어야 하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존재로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물질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화면 근경에 어색하게 배치되어 있는 사과 주스 또한 그의 이러한 비판의식을 표출해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로, 선악과의 상징인 사과를 대량생산의 시대적 관점에서 위트 있게 해석해 놓은 것이다. 즉, 사과 주스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련해 놓은 알레고리로 종교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개개인의 생각과 주도적인 판단이 인정되지 않는 물질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현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의 흔적이기도 하다. 사진 작업에 등장하는 파인애플 캔 역시, 대량생산의 산물로 간주하고 여기저기 찌그러진 캔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인간의 형상을 통해 외부자극에 저항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무기력한 현실과 그에 대한 작가적 저항이라는 하나의 주제는 그의 작품 전체에서 일관성 있게 드러나 보인다.
"pig 이 시대는 철학을 잃어버린 자들의 시대다. 내 그림에서 돼지는 나라는 한 인간의 상징체이자 콤플렉스의 총체이자 자신도 모르게 울타리에 갇혀버린 대중을 상징한다. 본래 영리하고 깨끗한 종의 특성을 지닌 그것은 사회의 체제에 의해 사육의 대상으로 몰락해버린 생(生) 자체가 서글픈 존재다. 이것은 나 자신의 자화상이자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경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슬픈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야기이다." -박종호 작가노트 중에서-

2. 회화기법에 대한 도전, 박현민
박현민의 작업은 유화물감으로 그린 한국화라는 인상이 강하다. 유화물감으로 한국화가 주는 입체감이나 양감의 표현을 배제한 함축적 표현기법을 구현하고자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작가이다. 한국화에서 보이는 종이 위에 얇게 올려지는 안료가 주는 가벼운 무게감은 그가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의 익명의 인물의 익명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인물에 대한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 대신 함축적이고 선적인 표현기법을 채택함으로써 보는 이들이 관찰자적 시점에서 인물들을 관찰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의도는 관람자 쪽을 향해 있는 화면 속 인물의 시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두 가지 형식의 회화기법에서 절충점을 찾아내고자 시도하는 그의 앞으로의 작업에도 기대를 걸어본다.
“내가 그리는 인물은 나에게 있어서 정신적 여유를 불러주는 인간관계이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라는 인간관계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정신적인 피안이 될 것이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연인을 그리며, 친구들을 그리는 그리움의 마음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진다.그래서 내가 화면에서 보여주는 인물은 나만의 가족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그리움의 대상인 것이다. 내가 그린 나의 조카가 누군가에게는 딸이 되어도 좋고 손녀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나의 조카를 당신의 인간관계 속의 그 누군가로 생각하고 마음의 위안을 받기를 바란다.“ -박현민 작가노트 중에서-

3. 잡지표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오수진
오수진은 광고와 대중매체의 대표적 모델인 잡지와 그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 즉 인쇄물속에 나오는 가공된 인물들을 사진보다 더 리얼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작가다. 캔버스에 묘사된 인물들은 잠시 동안 사진인지 그림인지를 혼동하게 하지만 그 배경에 의도적으로 흩트려진 붓 자국들은 그것이 사진이 아님을 보여주며 마침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하게 한다. 즉, 눈앞에 현실감있게 그려진 이미지는 작가에 의해 고도로 정밀하게 묘사된 정교하게 연출된 허구이고 따라서 눈앞에 존재하는 현존하는 이미지는 현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이중적 구조를 보여준다. 오수진이 이번 전시에서 택한 소재는 매체 속에서 다뤄지는 관념적 미의 상징적 모델로 우리시대 과대 포장된 허구적인 욕망을 뛰어난 묘사력을 바탕으로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나의 작업은 도처에 널려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이나 디지털 이미지들에서 출발하지만 사진의 차원을 넘어서는 세밀함과 집요한 노동력, 극도의 치열함이 표현과정 속에 녹아있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잡지 표지'라는 사물 자체가 주는 리얼리티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서 레이아웃 되고 극치의 노동성이 부여된 정제된 환영 위에 무심한 붓질이나 낙서 같은 해프닝적인 붓장난을 덧붙이거나, 흐트려 놓음으로서 잡지 표지 이미지 자체가 이미 사실에서 벗어나 과장되고 작가에 의해 다시 다듬어진 이미지라는 점, 그래서 사실은 비 실재적이며 허구적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오수진 작가노트 중에서-

4. 불편함에 대한 달콤한 해석, 이보람
이보람은 보도사진을 작품의 소재로 채택하여 그 본래 이미지를 재해석해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 화면에서 느껴지는 달콤함이라는 색채로 인한 첫인상은 이내 피흘리거나 머리만 남은 이미지라는 사실을 인식함과 동시에 깨어진다. 작가가 보도사진을 다시 화폭에 옮겨 놓은 방식을 취하는 배경은 매체에서 보여 지는 보도사진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의문제기이다. 보도사진에 채집된 상처 입은 희생자의 모습은 고통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전달할 뿐 그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끔찍한 광경의 직설적인 표현대신 핑크색을 중심으로 가볍고 달콤하게 이미지들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주제의 강렬함과 긴장감을 이완시켜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충격 대신 그 상황 이면에 있는 진실을 보고자 하는 작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면의 부분에 자주 등장하는 작가의 실루엣이나 눈에서 그러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고리에 매달려 있는 고기들, 파란 인형머리들은 나의 심리를 대변한다. 이들은 언뜻 보면 피해자, 혹은 희생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머리 없이 살덩이만 축 늘어져 고리에 매달려 있는 이 우울한 대상은 보도사진을 힘없이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나를 닮아있다. 인형머리도 마찬가지인데, 똑같은 모습의 인형머리의 파란색 물감으로 가려진 눈들은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사진들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대중을 닮아있다. 희생자들이 담긴 매체에서 쏟아지는 보도 사진들은 나에게는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알 수 없는 대상, 불편함을 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보람 작가노트 중에서-

5. 연필로 만들어가는 이미지 사슬, 이효영
이효영은 연필로만 작업하는 작가로 색채를 배재하고 무수히 많은 연필 선을 겹쳐 그림으로서 화면을 메워나간다. 전체적인 화면계획을 세운 후, 작업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그리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구체적 형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 기발한 이미지들은 각각의 개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면 전체적으로 다른 부분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큰 화면을 구성한다. 따라서 각각의 이미지들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각각의 도상들은 모두 작가에 의해 창조된 형상으로 떠오르는 대로 구상화시키는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묘사력의 산물인 것이다.
사실 연필 선을 겹쳐 색을 칠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채색화의 몇 곱절의 노동력과 노력이 요구된다. 즉, 이효영이 그려내는 초현실적인 세상은 상당한 인내력과 집중력, 그리고 화면전체와의 조화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조형의식이 필요한 작업인 것이다.
“나의 작업들은 순간적으로 스치는 시각적 심상을 포착한 것이다. 내가 그려내는 도상들은 나의 내밀한 감정이나 사연을 직접적으로, 혹은 서사적으로 담기보다는 어떠한 사물이나 사람, 사건에 대해 내가 포착한 찰나의 이미지를 화폭으로 옮긴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나 사물, 사건 등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렸을 때 즉각적으로 생기는 시각적 심상을 화면에 바로 그려내는 것인데 생각나는 대로 도상으로 옮긴 것이므로 나의 무의식에도 맞닿아 있다.
시각적 이미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그것을 조금씩 그려 나가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작은 도상들이 큰 화폭 위에 모여 발산하는 짜임새와 그것이 발산하는 강렬한 느낌은 내가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이효영 작가노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