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 수 없는 삶의 매력
최흥철 /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유망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갤러리 LVS는 습윤한 여름의 초입에서 청량감을 주는 작품들을 모아 기획전 ‘생의 매력’을 준비하였다. 이 전시는 미디어 아트의 장막을 걷어 내고 현대 미술 흐름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는 주목해야 할 작가 12인을 전시장으로 초대 하였다. 개인 미디어 시대에서 이 작가들은 매력적인 영상 작업을 통하여 일상과 삶에 대한 특별한 직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의 작업은 외과의사의 예리한 메스처럼 물 흐르듯 스치는 삶의 단면들을 예민하게 포착하거나 쪼개고 있다.
이 전시 작품들은 크게 세가지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이 전시 출품 작가들의 작업의 기본이 되는 영상 작품은 각각 뚜렷한 관심과 주제를 보여주는 김신일, 신기운, 오재우, 이정민 이렇게 4인의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애초 영상 설치 작업, 또는 상호 작용 작업에 기반하여 출발한 작품을 선보이는 mioon, 변순철, 이승준, 이준의의 극적인 스틸 이미지 또는 사진 작품들이 한 가지 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희선, 이동주, 조소연, 최종운은 공간 감각을 곁들인 아름다운 영상 설치 작품과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는 미디어 아트를 보여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미디어 아트는 현대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예술의 매체와 표현 방식에 더해 동시성과 소통의 영역으로 시각예술을 끌어올려 작가들의 우뢰와 같은 호응을 받으며 급속도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화면과 마주치는 경험은 이제 익숙한 일이다. 미래를 위한 예술인 미디어 아트는 전통 회화와 사진에 바라보는 방식에 대하여 신선한 바람을 지속적으로 불어넣고 있다. 이 새로움이 과연 소실점 원근법을 탈출하고 인상주의와 입체주의를 통과하여 결국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오늘날 우리의 시각 예술을 또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인가는 새삼 어리석은 질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무중력의 다양한 시점, 자유자재 이미지 변형과 재생산, 그리고 소비의 힘 등 이 모두가 무기력감에 빠진 미술가들을 재생시키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마법의 주문이 될 것이다.
사실 과학 기술의 방향은 우리의 문명을 보다 더 소통이 편리하고 용이하도록 발전하여 왔다. 보다 빠르게, 보다 직관적이게끔 기술이 발전하고 우리의 환경을 개선하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유토피아와의 조우할 것이라는 환상을 실제로 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해 겨눈 체 쉴 새 없이 돌고 있는 비디오 카메라가 서울에서만 8천 개 이상 설치되어 있으며 하루 종일 존엄한 개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적나라하게 찍고 있다는 사실에는 둔감하다. 제3의 물결 이후 고도의 첨단 정보 기술 발달로 인해 개인의 정보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를 비롯한 개인 영상 장비의 저렴한 보급으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포착하고 수집한 이미지를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하여 바로 ‘당신’이 주인공이 되는 쉽게 영상을 창조해 내는 시대이다. 즉, 보통 사람이 정보의 생산과 이용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였다.
하지만 개인간의 소통의 자유를 추구하던 기술의 행보는 정작 역설적으로 자기 표현의 수단을 충족시켜주며 개인화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다. 거대 미디어 권력과 개인 미디어 수단이 경쟁하여 결국 대중은 대용량의 쌍방향 소통의 권리를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의 통로가 단순해 지고, 왜 우리는 자기 표현에 더욱 몰두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통을 위한 세상이 열렸음에도 감히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치지를 못하며 시야를 사각 스크린 속으로 던지며 깊이 빠져 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소통은 시선 사이에 가로 놓인 몇 겹 화면을 통해 걸러지고 있다. 통찰력 있는 작가들은 이 사실을 간파하고 왜 우리가 유독 자기 표현에 더욱 열중하는 지, 어떻게 자신이 보여질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는 지의 실마리를 여기서 구하고 있다.
자기 표현의 몰두는 기억의 상실과도 연관이 깊다. 유의미한 정보 만을 받아들이려 해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의 연락처 같은 관심권 밖의 기억은 뇌가 아닌 몸 밖 별도의 저장 매체에 유기해 놓고 잊은 체로 지낸다. 가끔 필요하면 그때 가서 꺼내 보면 그 뿐이다. 마찬가지로 매 시간 공간 수 없이 포착된 이미지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 진다. 세익스피어는 존재의 본질이 사라진 후 남겨진 기억과 시선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눈이 녹으면 그 흰 빛은 어디로 가는 가를 물었다. 유튜브의 공동 창업자들인 스티브 첸(Steve Chen) 과 채드 헐리(Chad Hurley) 같은 이들은 스스로 답을 구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호수로 물이 고이 듯 수 없는 이미지들이 흘러 들도록 가상 공간 속에 저장소를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모습과 삶의 조건도 그에 따라 하루하루 변해간다. 반복되는 일상사 속에 완전히 종속되지는 않겠지만 예술가의 삶도 별 다를 게 없다. 그렇게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자신의 일상과 그의 예술을 분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소망하는 것과 잃어가는 것의 차이를 부정하며 보이는 것보다 느낌이 있는 것을 믿는다. 우리도 역시 잃어가는 것, 그리고 스스로 그리는 형상과 일상의 불일치 사이에서 기인하는 욕망의 갭을 메우고자 생의 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다. 바로 그 불완전성이 보석을 더울 반짝거리게 하는 일면과도 같은 우리 생의 특별한 매력이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매력 넘치는 일상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