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연민
최흥철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현재 중국 미술의 국제화는 급속도로 진행 중이며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1970년대 생들의 활약으로 넘어서는 독특한 지역색으로 세계 무대에서 발판을 마련해 왔다. 사회주의 팝을 넘어서 더욱 다채로워진 신세대 중국 미술의 흐름을 가늠하는 나침반으로써 1980년대 이후 출생 작가들의 흐름을 짚어본다면, 장펑은 이미 중요한 새로운 미술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서 1980년 이후 출생한 중국 신세대 작가의 풍향계이자 가늠자가 되는 작가이다.
작가로서 장펑은 그의 회화작업을 통해 사회적인, 하지만 결국은 정치적인 폭력에 의해 얼룩져 가는 어린 소녀를 화폭에 담아왔다. 과격하게 그려진 여성들은 급성장한 중국 자본주의 시장 경제 규모만큼 커진 이면의 그림자 아래에 깔린 인간 존엄성에 대한 폭력을 상기시킨다. 폭력의 형태는 전쟁 또는 혁명 같은 물리적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일상의 상황에서는 배제(排除)라는 비물리적인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비이성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세계일수록 약자들은 소외되고 배제되며, 저항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해 개인이 몰락하고 해체되어 간다. 그가 비춰 주고 있는 해체의 과정 속에 매몰되어가는 우리의 자화상은 동일시로 인한 공범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2006년에 발표한 일련의 소녀 사진 시리즈를 발표하며 전통적인 회화를 디지털 기술 기반의 사진 작업으로 이행하였다. 고광택 인화지 표면 속에 담겨 있는 어린 신부, 경극 복식, 또는 발레리나 복장을 한 귀여운 프랑스 인형 얼굴 풍의 소녀가 비극적인 냄새를 풍기며 비정상적으로 큰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 소녀들은 붉고 고운 빛깔의 장미꽃을 머리에 꽂고 있어서 각 장면이 서로 다르지 않고 일관되게 관통하는 코드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장면들을 통하여 우리는 극적 장면이 가상으로 연결되는 내러티브의 실험을 읽을 수 있다. 피와 공포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 시리즈 작품들 속의 상처 입은 그녀들은 작가가 일관되게 탐닉하고 있는 모순되는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의 말처럼 리비도로 충만한 남근기를 막 벗어나려 하는 불안한 성징의 존재들이다.
본디 어린이는 독립된 환경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하였으나 오늘날 대중 매체로부터 성적인 정보의 흐름에 노출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장펑이 파헤친 미성숙한 소녀의 모습은 로리타 콤플렉스의 발칙함으로 먼저 다가올 것이며 전통적인 관념에 대한 마조히즘적인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어린이로서의 즐거움을 유보한 채 성적 분화가 막 시작된 소녀가 어른의 삶을 미리 준비하는 모습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오늘날 서브 컬쳐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네오 팝 계열의 아티스트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일본 망가 중 하나인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연민에서의 공범의식이다.
장펑이 근래에 잘 짜인 구도의 연출 사진을 확장시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은 두드러진 변화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발표하는
전술한 대로
이 각기 다른 장면들은 씨줄과 낱줄처럼 엮이는 코드들이 있어서 재현으로서의 내러티브가 아닌 허위기억의 확실한 서술구조를 드러내고 있으나 우리가 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한 쪽 구석에서 거의 어김없이 등장하는 마오쩌둥의 이미지이다.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이미지들이 한 화면에서 공존하여 빚어내는 기묘한 광경의 매력은 비록 타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를 드러내고 있고, 중국 사회가 처한 사회 현실의 어려움을 풍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폭력성과 한 짝을 이루는 연민이라는 접착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결과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