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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나는 나를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게 특별했던 것은 없었다. 연필을 쥘 수 있을 때부터 그렸고 그리는 것이 그저 좋았다. 그래서 늘 그림을 그렸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머릿속에 시각적 이미지로 떠오르는 즉시 그 이미지를 바로 그려내는 것은 내게 습관같은 행위였다. 아무런 이유도 뚜렷한 동기도 없이 그저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외부 세계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면에 늘 침잠해 있었다. 어떠한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주변에서 많이 접하는 사람이나 동물, 사물을 자주 그리곤 했지만 구체적인 형상을 가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도상들이었다. 나의 작업들은 순간적으로 스치는 시각적 심상을 포착한 것이다. 내가 그려내는 도상들은 나의 내밀한 감정이나 사연을 직접적으로, 혹은 서사적으로 담기 보다는 어떠한 사물이나 사람, 사건에 대해 내가 포착한 찰나의 이미지를 화폭으로 옮긴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나 사물, 사건 등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렸을 때 즉각적으로 생기는 시각적 심상을 화면에 바로 그려내는 것인데 생각나는 그대로 도상으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화면속의 장면들은 대부분 나의 무의식에 맞닿아 있다. 나의 도상들은 내 개인적인 심상이다. 내 성격이나 관심사는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한다. 또한 각각의 도상들은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다. 그 형상들은 사람이나 동물, 사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형상들은 현실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과 순간적인 느낌에 의지하여 즉흥적으로 그려낸 도상인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사전에 한 화면 전체의 이미지를 구상하는 것이 아닌, 단독의 도상들을 조금씩 그려나간다. 공간감을 배제한 배경 위에 각각의 도상들에 입체감과 생동감을 부여하여 배치한다. 작은 도상들이 큰 화폭 위에 모여 발산하는 단단한 짜임새와 그것이 발산하는 강렬한 느낌을 살리는 것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다. 내가 작업을 할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은 관람자가 내 그림 앞에서 처음 받는 인상이다. 각각의 도상들이 화면 안에서 가지는 짜임새가 주는 순간적인 느낌을 염두에 두고 화면을 채워나간다. 나의 캔버스 속 이미지는 내게 포착된 것으로 어떠한 주장이나 논리를 펼치기 위함이 아닌 찰나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